"얼마 들어올래?"…1조 초대박 뒤 '은밀한 약조' 있었다 [회사채 활황의 이면①]

입력 2024-04-03 17:45   수정 2024-04-04 15:16

이 기사는 04월 03일 17:4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해 회사채 시장은 예상보다 뜨겁다. 기관투자가 수요가 집중되는 '연초 효과'가 역대급으로 나타나면서 발행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증권사의 '캡티브(Captive) 영업'이 자리하고 있다. 캡티브 영업은 발행 주관 업무를 담당하는 증권사들이 동시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런 행태가 심해지면서 회사채 가격이 왜곡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회사채 시장 내에서 출혈 경쟁에 나서고 있는 증권사와 수요예측 미매각을 피하면서 이자 부담을 낮추려는 발행기업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금융당국은 이 같이 회사채 시장에 만연한 캡티브 영업 행태를 들여다보고 있다.
수요예측 결과표에 대거 이름 올린 주관 증권사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현대그룹의 건설기계 부문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신용등급 A)는 지난달 22일 총 6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조달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수요예측 결과 총 모집 물량의 17배에 가까운 1조190억원의 자금이 몰리는 등 ‘초대박’을 냈다. 발행 규모도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회사채의 수요예측 결과표를 살펴보면 기존 ‘큰손’인 연기금·공제회의 이름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대신 이들의 자리는 주관사와 인수단으로 참여한 증권사와 관련 금융 계열사들이 차지했다. 이번 회사채에는 KB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대신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하이투자증권 등 총 9개 증권사가 주관사 및 인수단으로 포함됐다.

매수 주문을 넣은 금리 수준도 시장 잣대보다 낮은 편이다. 2년물의 경우 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미래에셋증권 등이 HD현대건설기계의 개별민평금리(채권 평가사들의 평균 평가 금리) 대비 ?50~-44bp(bp=0.01%포인트)에서 주문을 넣었다. 3년물에서도 신한투자증권·삼성증권·대신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이 개별민평을 크게 밑도는 금리에 주문서를 냈다. 모두 이번 회사채 발행 주관사와 인수단에 포함된 증권사다. 채권가격과 금리가 반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의 평가보다 높은 가격에 채권을 샀다는 뜻이다.


캡티브發 회사채 ‘공룡 주관사단’ 본격화
캡티브 영업은 증권사들이 리테일·운용·영업·FICC 파트 등을 통해 직접 회사채 매수 주문을 넣는 방식을 뜻한다. 보험사·자산운용사·캐피탈사 등 금융 계열사 참여를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회사채 주관을 맡길 테니 수요예측에서 낮은 금리에 일정 물량의 매수 주문을 넣겠다고 약속하는 채권발행시장(DCM) 특유의 영업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발행사가 회사채를 찍을 때 만기에 따라 주관 증권사가 구분된다. A기업이 2·3년물 회사채를 발행하면 주관 증권사도 각각 나눠 배정된다. 이 과정에서 2년물을 주관하는 증권사는 2년물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다만 3년물에는 매수 주문을 넣을 수 있다. 만기가 다르면 별개의 채권으로 간주한다는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증권사의 캡티브 영업이 과도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조달에 난항을 겪은 일부 발행사만 제한적으로 캡티브 물량 투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신용도·실적 등에 무관하게 거의 모든 발행사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캡티브로 추산되는 물량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달 7일 회사채를 발행한 롯데물산(AA-)의 수요예측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롯데물산은 한국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KB증권·대신증권·하나증권·하이투자증권·한화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 등 증권사 9곳을 주관사와 인수단으로 선정했다. 1000억원 모집에 총 4500억원의 주문이 접수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부분 물량이 주관사와 인수단에 있는 증권사나 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관련 금융 계열사 주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투자 목적을 위한 회사채 매수가 아닌 캡티브 영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올해 회사채 시장 최대어로 꼽혔던 LG에너지솔루션(AA)과 LG화학(AA+) 수요예측에서도 주관사들의 캡티브 물량이 대거 접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채 주관사단 대형화 현상이 본격화한 것도 캡티브 영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발행사들은 수요예측에서 캡티브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주관 증권사 수를 대폭 늘렸다. 회사채 주관사·인수단에 10곳이 넘는 증권사들이 몰리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올해 회사채 시장을 찾은 롯데지주(AA-)와 대한항공(A-)은 주관사와 인수단에 각각 14곳, 12곳의 증권사가 투입됐다. LG, SK, GS그룹 등 회사채 시장을 자주 찾는 대기업 계열사들도 예년과 달리 대규모 주관사단을 꾸리는 추세다.

한 크레딧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발행사의 신용도나 실적, 발행 규모 등에 무관하게 대부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캡티브 물량이 접수되고 있다”며 “증권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출혈 경쟁에 가세하면서 회사채 가격에 왜곡이 발생할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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